<중학교 국어교과서 소재 희곡의 현황과 희곡 읽기의 한 방법> 중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실>로 가셔서 해당 논문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중학교 국어 소재 희곡의 현황과 문제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학년에 유치진의 <원술랑>(장막극), 2학년에 실러(Schiller)의 <빌헤름 텔>(장막극), 3학년에 이강백의 <들판에서>(단막극)가 있는데, <들판에서>만이 전체를 싣고 있을 뿐 나머지는 장막극의 일 부분만 싣고 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뜨인다. 희곡의 학습목표로는, 1학년에서는 "희곡과 연극의 관계" "대사와 지시문"에 대해, 2학년에서는 "희곡의 구성"에 대해, 3학년에서는 "희곡의 인물"에 대해 학습하도록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가 실려 있지 않은 1.2학년의 경우 학습목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긴밀한 인과 관계로 짜여지는 희곡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체가 아닌 부분만 가지고 학습한다는 것은 그리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과정에 실린 작품을 통털어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의 전통극과 근(현)대극 사이의 단절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문학사의 가장 큰 문제가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 사이의 '전통 단절 현상'을 어떻게 해명하느냐이다. 이른바 이식문학론적 관점을 탈피하기 위하여 그 동안 많은 노력이 있어왔고, 어느 정도 탈피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곡과 연극에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전통극은 탈극장 방식의 야외 공연이 주를 이루었고, 또 극작가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은 구비전승 방식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에 서양에서 유입된 무대극적 연극과는 완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자칫하면 가면극과 같은 전통 연극은 수준이 낮은 상태의 연극이거나, 혹은 연극 이전 단계의 연행물로 보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빌헤름 텔>이 발표될 당시 우리나라의 연극은 가면극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러한 차이는 질적 우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연극적 토양의 독특한 차이가 만들어 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세 편의 작품들이 그러한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여지를 가지지 못한 점이 문제라 하겠다. <빌헤름 텔>이야 번연극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원술랑>이나 <들판에서> 중 한 편이라도 전통연극의 원리들을 계승하고 있는 작품으로 선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각 작품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2.1. 1학년 : <원술랑>

 

       중학교에 들어서서 처음 대하는 희곡이 <원술랑>이다. 유치진이 1950년에 발표한 <원술랑>은 국립극장 개관을 기념하여 공연되었다. 공연 당시 상당한 관객을 모았다고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 받아들이기에는 소재나 주제가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든다. 희곡에 대한 학습이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담겨 있어야 하겠는데, '국토 수호의 결연한 의지'라는 주제가6) 그들에게 얼마만큼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을지 우려된다. 문학으로서 희곡을 처음 접하는 단계임을 고려할 때 중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쉽게 공감되는 사건이 다루어진 작품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원술랑>을 지도할 때 발생하는 더 큰 어려움은 작품 자체가 역사극으로서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화랑 오계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 벌인 싸움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선행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술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이 자리에서 상세하게 논의할 여유가 없지만, 신라와 당 사이에 벌어진 싸움의 본령이 <원술랑>에 올바르게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아마도 원술을 비극적 영웅(tragic hero)으로 만들려는 유치진의 의도가 과도하게 작용하여 생긴 결과라 여겨지는데, 신라와 당의 싸움이 마치 원술 일 개인의 능력에 달린 듯이 그려진 점은 역사극으로서는 치명적 결함이다.7) 싸움에서 후퇴한 이후 부모에게 내침을 당하여 폐인이 된 그가 매소성 싸움에 참여하여 신라군의 승리를 주도한다는 상황 설정은 완전히 비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극의 주제까지도 흐리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신라를 구한 결과로 볼 때, 원술이 싸움에서 패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화랑오계를 내세워 죽음을 강요한 김유신의 처신은 억지처럼 보인다. "살아 뒷일을 도모함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돌이켜 나왔다는 원술의 처신이 오히려 현명하게 보일 때, '국토 수호의 결연한 의지'라는 주제는 공허하게 되어 버린다.

       <원술랑>이나 <빌헤름 텔>이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투쟁한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희곡을 선택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행동의 올바른 가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가 문학적으로 올바르게 형상화되지 못한 <원술랑>으로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 2학년 : <빌헤름 텔>

 

       실러의 <빌헤름 텔>도 극중사건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선행 학습이 필요한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곳에서 단일 민족간의 이합집산으로 역사가 흘러 왔으나, 유럽의 중세사는 전혀 그렇지 않아 중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당혹스런 측면이 있다.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로 이어지는 스위스 독립 투쟁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관계, 지배방식, 자치권이 가지는 의미 등등의 역사적 사실을 학습하여야 한다. 그러한 학습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빌헤름 텔>은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아 맞춘 궁사의 무용담 정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교과서에는 극의 일부분만 실려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과서에 실려있는 작품은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 중에서 선별될 필요가 있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 작품들은 작품 그 자체로서의 완성도가 높다는 측면 외에도, 중학생들에게 작품을 선별해서 읽게 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교육적 효과가 크다. 그러나 중학교 과정에서 소개되는 유일한 번역극이 왜 하필 <빌헤름 텔>인지가 문학사적 측면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간계와 사랑>(1784)으로 질풍노도시대의 비판적 정신세계를 대표하던 그는 프랑스대혁명을 계기로 급격하게 변화한다. 그는 독일의 현재 모습이 아닌 과거를 다루거나, 다른 나라의 과거사를 작품의 소재로 택함으로써 현실 도피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흐름 가운데 발표된 <빌헤름텔>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질적인 성향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독일 민족을 제압하려는 상황에서 독일민족이 보여 주어야 할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8)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빌헤름 텔>은 실러의 작품 경향을 대표할만한 문학사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소개할 작가를 굳이 실러로 택하였다면, <빌헤름 텔>보다는 독일 연극사상 최초로 완전한 평민 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의 핵심을 담아 보여주었던 <간계와 사랑>9)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빌헤름 텔>의 학습 목표는 희곡의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선은 작품 전체가 아닌 부분을 두고 희곡의 구성을 학습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빌헤름 텔>의 구성을 발단 → 전개 → 절정 → 하강 → 대단원식으로 가르칠 때, 그것이 프라이타그(Freytag)가 설정한 오부삼점구조(五部三點構造)에 입각한 것임을 학생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프라이타그는 독일 연극인들에게 모범적인 플롯구조를 제공할 목적으로 소포클레스와 세익스피어, 레싱, 괴테의 작품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오부삼점구조를 찾아내었다.10) 그러므로 오부삼점구조는 그때까지 서양 연극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러한 구조가 오늘날의 연극에서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양 연극에서도 부조리극계열 작품들, 브레히트의 서사극계열 작품들은 오부삼점구조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여야 하겠다.11)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전통극을 비롯하여 오부삼점구조에 맞지 않는 작품을 대했을 때 혼란이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3. 3학년 : <들판에서>

 

       이강백의 <들판에서>는 작품 전체가 실려있기 때문에 희곡 교육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앞으로 교과서가 개편될 때에는 모든 작품의 전체를 싣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교과서에 수록하기 위하여 창작된 작품이어서 공연 조건을 단순화하여 실연의 가능성을 높이려 한 것도 돋보인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기왕에 발표되어 있는 작품 중에서 선별하여 싣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들판에서>와 같이 학습자의 상황을 고려한 작품을 창작하여 싣는 것이 중학교 과정에서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다.

       들판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던 형제가 느닷없이 나타난 측량기사의 농간에 빠져 우애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민들레꽃을 보면서 다정했던 옛 시절을 상기하게 되고 마침내 벽을 허물게 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우화극(寓話劇)의 범주에 들어가겠다. 우화극은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그 자체의 고유 의미 외에 또 다른 상징적 의미가 덧붙어 작품의 주제를 형성하는 것이 매력이다. 이강백의 초기 작품인 <파수꾼>의 예에서처럼, 작품을 보면서 상징의 의미를 추론해나가는 재미는 작가와 관객이 더불어 즐기는 놀이와도 같다. 그러나 <들판에서>는 우화극의 재미가 너무 약한 아쉬움이 있다. 작품 속에 형과 아우, 그리고 측량기사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제들이 적기에 주어져 있지 않아서 작품의 현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거나, 비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극을 형제간에 "위기를 극복하고, 우애를 회복함"12)이라고 해석한다면 이 작품의 현상만을 받아들인 것이며,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동화극이 되어 버린다. 형제지간에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하기에는 들판에 벽이 세워지고, 망루가 등장하고, 총을 쏘는 극중 상황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과 아우, 측량기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그 이외의 해석은 지나친 비약으로 여겨질 것이다. 우애의 회복을 남북간의 동질성 회복으로 해석할 경우, 남북의 분단이 타율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충분한 지도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들판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하여 학습하도록 되어 있다. 전편이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수가 적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대한 학습을 하기에 적절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어교과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전형(典型)적 인물' '개성(個性)적 인물'로서 등장인물에 대해 학습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전형적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사회 계층이나 직업, 특정 세대를 대표하는 특성"이라 하였고, '개성적 인물'에 대해서는 "그 인물만의 특성을 지니고, 사건의 전개에 따른 성격의 변화를 독특하게 보여 주는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13)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이 반드시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리얼리즘문학에서 논의하는 '전형적 인물'과 혼돈을 일으킨다는 점과 중학교 단계에서 등장인물에 대해 학습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여야겠다.

       먼저, 국어교과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전형적 인물'은 '유형적 인물'의 설명이라 해야겠다.  리얼리즘문학에서 '전형적 인물'이란, 개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어서, 역사적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요소를 체현한 인물이라 하겠다.14) 동일한 용어에서 비롯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학교 국어 교과서 소재 희곡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는 '개성적 인물'과 '유형적 인물'로 수정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 다음은, 전형적 인물과 유형적 인물로 나누어 보는 것이 등장인물에 대한 학습으로서는 비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들판에서>처럼 단막 우화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개성적 인물'과 '유형적 인물'로 나누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무리가 따른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행동과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데, <들판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분법으로 분류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15) 더구나 '개성적 인물'과 '유형적 인물'은 작품의 성과를 통털어 비평하는 데에는 유용할지라도 희곡을 학습하는 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등장인물의 기능적 측면을 학습하는 것이 중학교 과정에서는 더욱 타당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극중 사건에 있어서 역할을 중심으로 보아 주동인물(protagonist)와 반동인물(antagonist)로 나누어 보면 갈등의 관계가 선명해지는 강점을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