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중장소의 설정과 전환

 

  탈판을 보면 마당 판으로서의 특징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그 하나가 공연장소와 극중장소의 문제이다. 어떤 연행이든지 그것이 행해지는 공연장소가 있고 그 공연의 내용에 연관된 극중장소가 있다. 공연장소는 외형상으로 보이고 있는 판 자체를 가리키고, 극중장소는 극의 전개에 따라 그에 맞게 설정되는 배경을 말한다. 서양의 무대극 특히 자연주의나 사실주의 연극에서는 극중장소가 변화될 때 그에 따른 무대장치의 변화가 필수적인데 반해 탈 판에서는 그러한 것이 불가능하므로 짧은 대사와 작은 소도구 정도를 가지고도 장면의 설정과 전환을 꾀해야 한다. 탈 판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특성은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마당극 작업에서 부딪치는 숱한 문제를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탈판에서의 장면설정은 매우 단순한 수준이어서 공연장소 그 자체의 크기와 모양을 벗어나지 않지만, 현대의 발전한 마당극에서는 공연장소와 동일한 크기의 극중장소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극중장소가 설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안방장면 같은 실내공간은 무대극에 비해 마당 판에서는 몹시 처리하기 어려운 극중장소의 하나이다. 마당극과 무대극이 이러한 차이를 갖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당과 무대가 형성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서구 연극에 있어 프러시니움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불과 삼백년 정도로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서양연극에서 극장이라는 건축물과 소위 프러시니움이라는 무대구조가 정착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들의 주택 형태와 응접실(또는 거실)이라는 그들의 생활공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서양인들의 생활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꾸며져왔던,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엿볼 마음을 갖게하는 장소는 바로 응접실이다. 그러니까 다소 비약해서 말한다면 프러시니움 무대의 원형은 그들의 응접실인 셈이며, 서양의 무대극은 마치 그들의 응접실을 엿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무대극에서 응접세트가 놓여있는 그러한 장면이 가장 많고 또 형상화에 있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결국 무대라는 공연의 장소가 그들의 주된 생활공간인 응접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마당 판은 우리에게 가장 주된 생활공간이자 집회의 장소이며 사건의 발생지랄 수 있는 마당을 공연장소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서양의 무대와 우리의 마당 판은 형성의 근거가 매우 대조적인 측면이 있다. 때문에 무대극에서는 전투 장면이나 집회 장면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반면 마당 판에서는 비밀스런 실내장면 같은 것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주어진 공간 자체의 한계이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연출 기법이 필요하다.

  마당 판에서 안방장면을 만들어야 할 경우 대개는 그냥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안방장면은 마당 판에 부적합한 공간을 들여오는 것이므로 길게 끌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렇듯 전체 판의 큰 틀에 적합하지 않은 사건이나 장면의 설정은 지루하게 장면 화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삽입하는 형태가 좋다. 이를 다른 용어로 지칭한다면 '간접화법화'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안방장면의 경우 그것을 직접화법으로 구성하여 길게 끌지 말고 간접화 시켜서 '이런 대화가 안방에서 있었다'하고 빨리 넘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마당 판은 그 나름의 활력으로 속도감 있게 끌고 가야지, 처지는 장면을 무리하게 설정하는 것은 좋은 연출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다음과 같은 서사극적 표현법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안방'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것도 재미있는 표현법이다. 만일 안방의 분위기를 좀더 상세하게 설명해야 할 경우라면 팻말에 '안방…0평'하고 써놓을 수도 있겠고 혹은 적당한 달력을 배우가 들고 나와 분위기는 물론 사건배경 날짜까지도 고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간단한 소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때로는 장면의 전환을 아주 매끄럽게도 할 수 있을 터이니 일석삼조의 효과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마당 판에서는 가능한 한 조명을 쓰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에 나는 될 수 있는 한 조명을 배제하려고 하는데 한번은 꼭 암전을 썼으면 싶은 경우가 있었다. 시간경과 및 장면전환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현해야 하겠는데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팻말을 들고 지나가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일 수 있지만),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암전효과를 낼 방법을 곰곰히 찾아보았다. 그래서 얻어낸 아이디어가 관객으로 하여금 눈을 감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관객이 눈을 감으면 암전이요, 눈을 뜨면 조명이 들어온 것이 되니까……. 관객에게 잠시 눈을 감고 숙고하게 하는 방법을 마당극 장면전환의 기본 기술로 채택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앞으로 마당극에서도 다양한 표현기법들이 적극 개발되어 일반 원리로 보편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자, 우리 손을 잡자>라는 대형 노래공연에서 갑자기 조명이 나가 모두들 매우 당황하고 있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라이터 불을 켜서 공연을 지속시킨 적이 있다. 그것이 그후에 일반화되어 지금은 조명이 나가지 않아도 만 여명이 넘는 관객들이 스스로 분위기에 맞춰 라이터 불을 킨다. 마당 판에서만 가능한 '관중의 집단적 참여'가 그렇듯 멋드러지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당극 공연양식에 있어 일반화 시킬 수 있는 표현기법들이 개발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우리가 관객과 메기고 받거나 관객을 소도구화 하거나 대상화하는 여러 가지 기법들을 활용해 왔는데 앞으로는 그보다 더 주동적으로 관객을 활용하는, 관객 자신이 판을 이끌어가는 표현기법들이 보편화, 일반화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꾸준히 창안해내면 그 동안 마당 판에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온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마당 판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판의 넘나듦'과 관련한 배우의 연기술이다. 공연장소를 극중장소로 환치했다가 다시 공연장소로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도 판을 넘나드는 것이지만, 배우가 한 등장인물이 되었다가 다시 연행자인 배우로 돌아왔다가 또다시 다른 등장인물이 되는 역할 바꾸기야말로 마당 판 연기자의 기본적인 넘나듦이다. 그것은 판소리 같은 종목에서 특히 요구되는 연기술이다. 우리의 민중연희에서 광대라는 존재의 기본 원칙은 연행 자로서의 역할과 극중 등장인물의 역할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변신술에 있는데 그것이 가장 극대화 되어 있는 것이 판소리라는 말이다. 판소리에서 광대는 처음에 아니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이었다가, 점차 보다 입체적 방식인 강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리꾼으로 바뀐다. 강창 즉 소리를 해나감에 있어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그 등장인물이 되어 1인칭의 입장에서 연기한다. 이렇듯 등장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핍진하게 연기를 하던 광대가 이제 역할 밖으로 빠져 나오면 다시 이야기꾼으로서 아니리를 한다. 이러한 넘나듦의 원리를 가장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사용했던 마당극의 예를 우리는 <함평고구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과 20분 정도의 짧은 단막 작품임에도 그 작품을 우리가 극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원리를 잘 포착해야 한다. <함평고구마>의 판에 등장하는 광대들은 사건은 전달하는 전달자이었다가 그 사건의 당사자로 깊이 들어가기도 하고 다시 공연현장으로 빠져나와 관중과 동질적인 입장에 서기도 한다. 공연장소의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마당 판 배우의 기능이 매우 역동적이어서 판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고조되어 있었다. 넘나듦의 원리가 마당 판에서 매우 중요한 기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발견했던 것이다.

  공연장소로부터 극중장소로의 설정 및 전환은 매우 다기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당 판에서 감방을 설정한다고 하자.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감방의 생김새, 크기, 감방 내의 여러 위치들을 설명해야 할텐데, 내가 연출했던 작품을 갖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녹두꽃>, <밥> 등의 작품에서 감방장면을 연출할 때 그 형상화를 위해 몇 가지 기법을 도입했었다. 예를 들어 벽에 손을 대고 기합을 받는 장면을 만들게 되면 배우들의 마임에 의해 사면의 벽이 설정된다. '공연장소'와는 그 형태 및 범주가 다른 '극중장소'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당극의 극작술과도 긴밀하게 연관되는 문제이다. 마당극의 대본에서는, 설정된 극중장소가 있어서 그 안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극중장소를 설정하기 위한 극적 장치의 과정까지 그대로 행동화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당판이 가지고 있는 표현상의 한계를 재미있고 거뜬한 방법으로 해결해버리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것은 어차피 약속이다. 사실 서양연극이야말로 일종의 엉터리 약속이다. 설정된 무대배경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을 사실처럼 믿어달라는 암묵적 약속하에 연극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마당 판의 약속은 매우 현실적이고 솔직한 약속이다. "이곳을 감방으로 보아달라"고 재미난 방식으로 부탁하고나서 극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예를 들었던 그러한 마당판적인 표현기법들에 대해 스스로 어색해하거나 공연히 계면쩍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