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울리기

언젠가 우리 어머니가 내 공연을 보신 적이 있는데, 판소리 '오월 광주' 공연을 보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딱 한마디였다. "아범아, 공연은 웃기고 울리는게 있어야 하는데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욕봤다." 사실 웃기는 일로 치면 나는 대학 시절부터 소문난 사람인데 작품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보니 관객을 웃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들이 좋은 대학 나와 갖고 엉뚱한 고생길로 들어선 것 같아 안쓰러워서 하신 말씀일게다. 어떻든 정규교육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니가 내놓은 이 한마디 안에 관객들의 반응과 비평이 다 함축되어 있다고 나는 본다. 미학자들이 어렵게 이야기하는 풍자니 해학이니, 비극이니, 희극이니, 비장미니, 숭고미니 하는 미적 범주에 관한 이론을 우리 어머니는 "사람을 울리고 웃겨야 좋은 공연"이라는 말씀으로 명료하게 단순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대체로 작품을 만들다보면 웃기는 쪽과 울리는 쪽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때가 많다. 웃기는 쪽에 치우치게 되면 울리는 것이 약하고, 울리는 쪽에 치우치게 되면 웃기는 것은 더 어렵게 된다. 작품의 주제나 판의 성격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쪽에 비중을 둔다 하더라도 웃기고 울리는 것 즉 희열과 비애, 풍자와 장엄히 균형 있게 배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균형을 잃고 어그러지거나 치우치거나 하면 결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판소리 <똥바다>의 경우 워낙 풍자가 강한 작품이라서, 그 이면에 한반도 전체가 몰살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주제가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관객에게 전달이 잘 안된 채 다만 일본과 매판 지배층에 대한 풍자에 머무른 듯한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판소리 <5월 광주>의 경우는 워낙 주제가 무겁다보니 관중들이 주제에 짓눌려 답답해 하기도 한다. 실제 광주항쟁 과정에서 시민들은 급박한 정황에서도 낙관적인 측면, 열정적인 측면, 그리고 적대자에 대한 통쾌한 대응 등이 있었을 터인데 그러한 부분들이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무거운 느낌을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당 판의 공연이 웃기거나 울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자칫 이 문제를 좌우 균형문제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좀더 설명을 보완하겠다. 풍자와 장엄, 희열과 비애라고 하는 서로 상반되는 미적 범주들을 하나의 작품에서 병렬적으로 균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슨 재주로 사람을 앉혀놓고 웃겼다 울렸다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웃기는 것과 울리는 것은 작품 속에서 순차적으로 배분된 다기 보다 작품의 안과 밖을 이루는 상호보완 관계로 보아야 한다. 다른 장르들에도 그런 성격이 없지 않겠지만 특히 마당극 공연에는 표면과 이면의 양면성이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형식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풍자의 소재 그 자체가 작품의 이면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작품의 이면에는 늘 진지한 주제가 자리잡고 있되 풍자나 해학은 그러한 이면의 주제를 언뜻언뜻 드러내주는 표면으로 기능한다. 표면의 일부를 살짝 뜯어 잠깐씩 속을 들여다 본다 고나 할까? 표면과 이면의 이중적 성격이야 말로 마당 판에서 필히 요구되는 작품 내적 구조이다.

사람을 웃기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알고 의표를 찔러야 한다. 사람들이 지나쳐버린, 숨어있는 본질을 잡아내어 찌를 때(뒤통수를 칠 때) 사람들은 통쾌하게 웃는다. 하지만 의표를 찌르기 위해서는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본질을 속으로 감추고 밖으로 나타난 현상에 대해(사람들이 언제나 직접 대면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현상이다.) 의표를 정확히 찌름으로써 현상의 무모함, 어리석음, 거짓됨을 폭로해낼 때 웃음이 유발되는 것이다. 의표를 찌르지 못하는 작품은 겉돌게 된다. 특히 마당 판에서는 관객의 의표를 찔러서 언제나 관객의 예상을 앞질러가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사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의표를 찌르는 대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극작단계에서부터 표면적 대사로부터 이면적 대사로 들어가는 두어 번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사간의 갈등장면을 만든다고 하자. 처음에는 노사가 주장할 수 있는 아주 표면적이고 상투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정황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실지로 만나 그렇듯 짜여진 공식적인 말만을 주고 받을 리는 없기 때문에 다음 단계에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표면적 대사에서 한꺼풀 더 들어간 대사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되어 가는 중에 이제는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 그것을 연행하고 있는 배우의 성격과 생각을 집어넣는 단계가 온다. 등장인물의 직접대화를 판에 나와있는 연행자 자신의 입장, 관점에 용해시켜 서사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만들어진 대사 외에 판에서 생겨나는 즉발적 상황에 따라 수정 가감하는 단계이다. 관중과 마주쳐서 한번 더 뒤집어 핵심을 드러내는 것, 이것은 어차피 배우의 몫이다. 이렇듯 대사만 놓고 보더라도 표면에서 이면으로 도달한 단계일수록 생동하는 대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