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 판에서의 언표방식
다음으로, 좀 지엽적인 문제이지만 마당 판에서는 기본적으로 구어체를 써야 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차라리 풍자를 위해 문어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토속어, 토리를 정확히 활용하고 계층, 지역, 성별, 품성, 주제내용 등등에 따라 적합한 단어, 말투, 억양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 이야기 한다면, 마당 판 배우들의 언어훈련에 관한 것인데, 무대극 배우들은 대사표현에 100% 의지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훈련 또한 그 방면에 집중되어 있음에 비해 마당 판 배우들은 거의 언어훈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언어훈련이란, 방법상으로는 서양연극에서의 그것을 참고할 수 있겠지만 내용에 있어 같지는 않을 것이다. 판소리와 서양 가곡 발성법이 다르듯이 우리말과 서양말에는 언어의 차이와 그에 따른 발성법의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벧칸토 발성이란 서양 사람들 말의 발성법을 음악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서양사람들 말을 입체적으로 극대화 시킨 것이 그들의 오페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의 발성법, 음독법을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의 발성법을 연구하여 우리의 말투를 강화하고 확장하고 입체화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발성훈련을 위해 판소리 수련을 제안하는 바이다. 나도 원래 발성이 좋지 못한 편인데, (그래서 대학에서 연극을 할 때 주연을 못해봤다.) 판소리 수련을 하고 나서는 발성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판소리는 뱃심으로 하기 때문에 소리의 길이 다르고, 그래서 질도 다르고 양도 다르고, 또 그래서 맛도 다르다. 그러므로 판소리 수련을 통해 큰 소리 높은 소리 등 마당 판에 필요한 기본적인 발성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비성이 많은 소리는 마당 판에서 아주 부적합한 조건이라고 해야겠는데, 이러한 사람은 뱃심으로 복성을 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마당 판에서의 대화법은 무대극에서처럼 점잖고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기본적으로 방백에 가까운, 위로 띄우고 멀리 던지고 사방으로 뿌리는 그러한 대사 방식이 많다. 그렇게 해야 빙 둘러 서있는 구경꾼들에게 고루 잘 들릴 테니까…. 그런데 이러한 방백적 언표방식은 우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전래해 온 방식이고 지금 현재도 민중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언어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돈많고 지체 높고 학식 있고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경우 점잖게 대화를 주고 받거나 또는 은밀하게 속삭이는 방식이 많음에 비해, 선량하고 투박하고 여럿이 잘 어울리는 공동체적 삶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 방백적 언표방식이 몸에 배어있다. (예를 들면 가까이 있는 둘이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치 옆에 있는 다른사람 들으란 듯이 목청을 크게 띄우는 것 같은 발성법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우리 민중들은 이미 일상적으로 마당판적 언표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말하자면 일상의 대인관계도 원래 마당판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다.
논의를 좀더 진전시켜 보자. 마당 판에서의 발성에 관해 얘길 했는데, 그렇다고 마당 판에서는 큰 성량만 요구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또 목소리 크다고 잘 전달되는 것만도 아니니까…. 판소리에서 어떤 때는 하성으로 우르르 쾅쾅하는 큰소리를 내지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상성의 세성을 내야할 때가 있다. 그런데 고음의 세성을 낼 때 실제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데도 관중들에게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건 조금 어려운 얘기인데, 말하자면 광대의 '발림을 듣는' 것이다. 고음의 세성을 내는 것이므로 성량이 못미처 소리가 나지 않음에도 오히려 관중들이 환청을 듣게 되는 것은 소리길의 연속성 때문일텐데, 구체적으로는 광대의 발림 즉 입모양과 표정을 보고 소리를 느끼는 것이다. 마당 판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본다. 마당 판에서는 듣고 보는 것에 대해 그 감각이 환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감각들이 종합될 수 있어야 한다. 꼭 보이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을 듣는 1차적 감각에만 의존해서는, 공명이 좋은 극장 무대에 비해 마당 판은 열세일 수밖에 없다.
판소리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우리말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듣는 것을 통해서 보게끔 하는 것, 즉 말로 그리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주로 이성적인 내용은 청각으로 감지하여 그대로 인식하게 되지만 감성적인 내용은 (감정을 풍부하게 해서 잘 표현할 경우) 청각적으로 들은 것을 시각화 시켜서 인식하게 된다. 즉 듣는 사람 스스로 눈으로 장면을 그려보게 되는 것인데, 실제로 우리의 의식작용이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고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눈에 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당 판의 배우라면 언어표현 수준이 그러한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관객이 스스로 그려보게끔 하여야지 사건 자체, 대사자체를 보고 듣는 것에 그쳐서는 1차적인 데에 머무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러한 기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마도 황석영 선배가 아닐까 한다. 황석영 선배의 소설이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글자를 읽으면서도 그림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로 영화를 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한때 라디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위기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러다가 텔레비전에 시청자를 다 뺏기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라디오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증명되었다. 실제로 텔레비전 드라마보다 라디오 드라마가 더 실감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몇 해전 임꺽정을 TV드라마화한 적이 있는데 참 재미없는 드라마였다. 임꺽정이라는 인물에 걸맞은 배우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의 스펙터클한 효과라는 것도 도리어 라디오의 소리를 들으면서 상상해 보는 것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각을 통해 상상 속에서 장면을 그리게끔 하는 것이 직접 시각적으로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실감나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텔레비전이 오히려 라디오보다 더 매체로서 한계를 갖는 것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당 판은 여러 가지 감각을 환치시키고 교류시키고 상승시킴으로써 무대극이 가지고 있는 시청각적 한계를 오히려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마당 판의 특질이며 장점이다. 무대에서 이야기되는 내용이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관중으로 하여금 다른 차원, 다른 영역에서 생각케 함으로써 오히려 인식을 돕고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마당극은 이러한 점에서 서사극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열려진 연극이다.